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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어른이 같이 읽어도 좋을 조선의 화가 이야기   07-12-14
김영조   4,535
 

아이와 어른이 같이 읽어도 좋을 조선의 화가 이야기


[서평] 조정육이 쓴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 조정육 씨가 길벗어린이를 통해 내놓은 책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표지
ⓒ 길벗어린이



당신은 피카소가 그린 어려운 그림과 함께 조선의 그림,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았는가? 혹시 귀를 자른 고흐와 함께 자신의 눈을 송곳으로 찌른 최북을 아는가?

어쩌면 이런 물음은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대다수의 한국 사람은 서양 화가들을 줄줄 외우고, 서양 그림을 자주 볼 기회가 있지만 조선의 그림과 화가를 알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육과 언론의 잘못에서 온 것이겠지만 이를 소개하는 책이 별로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침 이 조선의 화가, 조선의 그림을 맛깔스럽게 소개한 책이 나왔다. 그 책은 우리의 화가, 우리의 그림에 푹 빠져 여러 책을 내기도 했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조정육 씨가 ‘길벗어린이(대표 이호균)’를 통해서 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이 그것이다.

글쓴이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서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중국식 그림기법으로는 조선 산천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는 것을, 조선의 산과 강은 조선식으로 그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정선의 그림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진짜 우리 산천에 맞는 선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산과 언덕을 그리는 새 기법을 개발했지요. 그것이 바로 ‘진경산수화’였습니다.”


이렇게 정선이 시작한 진경산수화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다.





▲ 정선의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신선이 산다는 겨울 금강산(개골산)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 길벗어린이




▲ 신사임당과 정선의 "수박과 들쥐" 왼쪽은 신사임당 초충도 "수박과 들쥐"로
섬세한 필선, 고운 채색, 안정된 구도이며, 오른쪽은 정선의 "수박과 들쥐"로
비슷한 색을 써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감이 있다. ⓒ 길벗어린이



▲ 김명국의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중 "늦여름" 비단 바탕에 금으로 그렸다
ⓒ 길벗어린이



그런가 하면
“불행히도 여자는 남자들처럼 자신의 뜻을 크게 펼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났지만 사임당은 자신의 처지를 푸념하거나 한탄하지는 않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탓하고 주저앉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그 가운데서 발견한 것이 바로 ‘초충도’입니다.”라며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그려진 배경도 말해준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절망하지 않고 그 환경을 자아개발의 기회로 삼았던 신사임당의 슬기로움이 그려졌다. 또 다른 화가의 설명을 보자.


“칼을 뽑을 수 있고 고개 숙여 절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답은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칼을 뽑는 대신 고개를 수그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김명국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칼을 겨누던 일본인을,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게 만든 것이 바로 김명국의 실력이었습니다.”
라고 김명국이 일본에서 사무라이의 고개를 숙이게 했던 이야기를 한다.




▲ 윤두서 자화상과 필노승도 (왼쪽)수염 한 올까지 그리고 그 정신까지 세세히 그린
윤두서 초상화, (오른쪽)단숨에 내리그은듯한 지팡이의 필노승도(筆老僧圖) ⓒ 길벗어린이




▲ 추사의 글씨 "무량수각" 위는 유배 가는 길에 쓴 해남 대흥사 편액으로 획이 기름지고
굵으며, 아래는 유배 뒤 예산 화암사에 써준 것으로 획이 가늘면서도 힘과 멋이 함께 들어
있다. ⓒ 김영조




▲ 안견의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것으로 조선 초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 김영조



또 그는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네. 이 고통이 내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즐겁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하늘이 사람을 태어나게 할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내가 겪는 고난과 역경도 분명히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네. 결국, 세상 일이라는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깨달았지.”라고 윤두서의 입을 통해서 삶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림이 아닌 글씨도 하나 소개된다. 바로 추사 김정희인데 특히 유배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써준 편액 “无量壽閣(무량수각)”과 같은 글씨를 유배 뒤에 예산 화암사에 써준 것이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주어 예술가에게 고통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말해준다.

이 책이 첫 번째 소개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조금은 어려운 그림이다. 그 그림을 설명하며 글쓴이는 왼편 야산 쪽은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그렸지만, 복숭아꽃이 만발한 오른쪽을 부감법으로 그렸다는 말로 쉽게 풀이하기도 한다.

물론 이 책에도 옥에 티는 있다. 분명히 아이들을 위한 책인데도 표현이 어른스러운 데가 있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듯한 낱말이 조금 보이고 있어 아쉽기도 하다. 또 초상화 얘기에선 채제공 영정 등 다른 대표적인 초상화를 곁들여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김명국 편에서는 당시 일본 풍습을 설명하면서 일본인들의 잔학성을 지나치게 자세한 표현을 해 아이들이 섬뜩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 김홍도 <수원 능행도 병풍> 중에서 (왼쪽)봉수당에서 열린 회갑 잔치, (가운데)득중정어사도로 불꽃놀이 장면, (오른쪽)어가가 한강을 배다리로 건너는 장면 ⓒ 김영조



▲ 심사정 그림들 (왼쪽) "딱따구리"(딱다구리가 쪼아 대자 매화꽃잎이 떨어진다),
하마선인도(동전 달린 끈으로 두꺼비를 끌어올린다) ⓒ 김영조



하지만, 그런 옥에 티가 이 책의 훌륭함에 상처가 되지는 못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조선의 화가, 조선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삶 속의 고통을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 것인가를 담담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또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에게도 가슴 속으로 다가오는 그런 책이다. 그저 그림과 화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약간의 허구를 통해 뭔가 잔잔한 그리고 아름다운 철학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음이다.

우리는 정해년(丁亥年)의 마지막을 붙들고 있다. 이때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음으로써 조선 미술을 이해함과 더불어 글쓴이가 귀띔하는 삶의 비법을 가슴 속에 담아보면 좋겠다. 그러면서 조용히 정해년을 마무리하고, 무자년(戊子年) 쥐띠해를 맞을 일이다.



10명의 화가와 각각 치열한 연애를 했다.

[대담]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지은이 조정육




▲ 지은이 조정육 대담을 하는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지은이 조정육
ⓒ 김영조 조정육



- 어떤 계기로 조선의 그림에 빠지게 되었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까닭 없이 그저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조선 그림을 보면 그저 좋았다. 보면 볼수록 진국이었다. 그렇게 좋은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쓴 책이지만 아이 책일 때는 전적으로 아이의 의견을 들어서 썼다. 내 아이는 말했다.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좋다’고 했다. 그런 그림이 대상이 되었다.”

- 조선 그림에 대한 책을 썼으니 조선 그림에 대해 몇 가지 가르쳐 달다. 윤두서 초상은 몸뿐이 아니라 목과 귀도 없다. 그 까닭을 오주석 교수는 미완성의 상태에서 관리소홀로 밑그림이 지워진 것으로 본다. 그에 대한 생각은?

“그건 좀 잘못 해석한 듯하다. 조선의 초상화를 보면 극사실화라고 하지만 실제론 구도에 따라 특징을 살리는 그림들이다. 예를 들면 조선의 초상화들은 한결같이 눈은 정면인데 코는 1/4 정도 틀어져 있다. 또 귀는 한쪽만 그리는 것은 물론 당나귀처럼 길게 그린다. 윤두서 자화상에서 귀를 그리면 이상할 것이다. 윤두서는 철저히 구도를 바라봤기에 귀를 생략했다고 본다.

진경산수화를 봐도 산수를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뜻이 아니다. 진경산수화를 시작한 정선의 그림을 보면 인왕산의 바위에 무게감을 주려고 흰빛이 아닌 검정빛으로 그렸고, 폭포도 실제보다 길게 그려 폭포소리가 훨씬 우렁차고 세차게 들리는 듯하다. 극사실화든 진경산수화든 그것들을 낱말 그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

그런 설명을 하면서 그녀는 조선의 초상화를 몇 개 보여주었다. 역시 모두 한쪽 귀만 그려졌고, 당나귀 귀였다. 또 눈은 정면이었지만 코는 약간 틀어졌다. 정선의 그림도 설명과 같았다.


- 신윤복의 ‘월하정인’은 달밤에 두 남녀가 만나는 장면이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는 통금이 있었고 여성들은 나들이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면 이 그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또 애련의 얘기가 사실인가?

“조선 후기 조선에 온 외국인이 쓴 기록을 보면 밤에 여성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미 월하정인을 그린 18세기에는 인정을 친 이후에도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돌아다녔을 것이며, 밤에 외출했다면 양가댁 여성이라기보다는 기생일 가능성이 크다. 이 그림에서 눈여겨볼 것은 초승달이 뒤집혀 그려졌다.

여기서 한 가지 고백하는데 신윤복의 미인도를 설명하는 글에 애달픈 애련의 얘기가 나오는 부분은 허구다. 아마 그랬을 것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림에는 그런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었지 않을까? 그렇게 바라보니 훨씬 그 그림에 애정이 갔음을 밝힌다.”

- 추사는 많은 중국학자와 깊은 교분이 있었지만 중국 것의 모방이 아니라 조선만의 글씨를 썼다고 하는데 사실이라고 생각하나?

“추사는 고증학·금석학이 발달한 중국을 보면서 옛것만 밝히고 그대로 따르는데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을 것이고, 추사는 그런 옛 글씨를 그대로 쓰지 않고 가장 조선적인 것을 구현해냈다. 그 때문에 옹방강이란 중국의 대학자가 추사를 인정한 것이다. 적어도 추사의 글씨는 유배 이후 옹방강의 영향을 씻고, 산전수전 다 겪은 내공을 보였다. 추사는 글씨에 관한 굉장한 디자이너였다고 생각한다.”

- 조선의 위대한 화가들의 말년은 대부분 비참했거나 흔적이 없는데 그것은 신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화가들의 치열한 예술정신 때문은 아니었을까? 또 조선의 화가들은 대부분 술에 절어 살았다고 하는데 그건 뭘 말하는 것일까?

“조선의 화가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왕족, 사대부, 중인, 떠돌이 화가가 그것이다. 여기서 왕족과 사대부는 취미로 했을 뿐이지만 특히 중인 화가는 치열하게 그림에 매달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사대부처럼 거드름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 그리고 자존심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치열함 때문에 술에 절어 살았거나 비참한 말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책에 서양 고흐보다 더 치열한, 자신의 눈을 송곳으로 찌른 그림쟁이 최북이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을

“나도 그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책에는 각 부분의 대표적인 화가 한 사람씩 소개해야 했는데 최북은 같은 남종화가인 심사정과 겹쳤다. 삶에서는 최북이 재미있지만 작품성에는 심사정이 뛰어나다. 아깝지만 최북은 2권에서 다룰 생각이다. 1권에 소개된 화가들은 조선시대 최고라 할만 하다.”

- 10명의 화가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화가와 그림은? 열 손가락 깨물면 다 아프다는 말이 아닌 실제 생각을 말해달라.

“나는 열 명의 화가 모두가 정말 좋다. 실제 나는 글을 쓸 때 각각의 화가와 연애를 했다. 안견을 쓸 때는 안견과 치열한 사랑을 했고, 안견이 끝나면 안견에 미안한 마음이 있어 바로 신사임당을 만날 수 없었다. 한 화가를 정리한 다음 다른 화가를 만날 때까지는 한 달이 걸리기도 했다. 이 책에 소개된 화가들은 모두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인들이다.”

- 또 다른 집필 계획은?

“지금 ≪이야기 조선시대 회화사≫ 3편과 ≪동양미술 에세이≫ 3편을 편집하고 있어서 곧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 책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도 2편을 바로 준비할 것이다.”

나는 지은이에게 조선의 그림을 배웠다. 배우면서 그녀의 치열한 조선의 그림 사랑은 내게 혀를 내두르게 했다. 지은이는 삶 속의 고통을 그림과의 사랑으로 풀어내 왔음이었다. 이제 그녀와의 만남은 조선시대 화가들과 내가 또 다른 애인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녀는 내게 또 하나의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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