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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강 명인, 청중을 압도하다.   06-12-26
김영조   4,097
 

이생강 명인, 청중을 압도하다.

해설이 있는 대금산조 원형발표회 열어





▲ 죽향 이생강 대금산조 원형 발표회 소책자 표지 ⓒ (사)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



“대금은 어떻게 연주하며, 대금산조는 어떤 계기로 대중 앞에 서게 되었을까?” 이는 대금에 관심을 두는 이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쉽게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시대 최고의 대금 명인 이생강 선생이 “해설이 있는 대금 연주”를 한다고 해서 좇아갔다. 11월 30일 삼성동의 ‘한국문화의 집(코우스)’에서 저녁 7시에 ‘(사)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 주최, ’국악신문사‘ 주관으로 있었다.

대금은 국악기 중 대나무로 만들어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 내는 악기인 공명악기(共鳴樂器)이며, ‘저’ 또는 ‘젓대’라고도 한다. 정악만을 연주하는 정악대금(正樂大笒:풍류대금)과 민속악인 산조만을 연주하는 산조대금(散調大笒:시나위젓대)의 두 종류가 있고, 살이 두껍고 단단하며, 양쪽 줄기에 홈이 깊이 팬 병든 대나무인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 것이 가장 좋다.

삼국유사에 이것을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바람과 파도가 자는 등 만 가지의 모든 나쁜 일이 물러난다고 하여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부른 악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악기가 대금일 것으로 본다. 정완영 시인은 “한 가락 젓대를 불어 일만파도 다 눕히면/한라도 구름을 열고 달을 띄워 이더라.”라고 노래한다.

그 대금의 한국 최고 명인으로 꼽히는 죽향(竹鄕) 이생강(69)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이며, 지난해 11월 18일 국악 부분에선 가장 큰 상으로 여겨지는 '방일영국악상'을 받았다. 그때 방일영국악상 심사위원장이었던 한명희 선생은 말한다.

"그동안 그에게 붙여져 온 명성은 결코 우연이나 허명이 아니고 예술적 자질과 노력이 직조해온 필연적 결실이라 하겠습니다. 실로 이생강 명인의 젓대음악은 그동안 암울한 시대의 아픔을 달래오며 우리의 생활 속에 포근한 서정의 앙금을 쌓아 왔습니다. 특히 지난 세기 후반 내내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 대중의 심금을 달래가며 한국 음악계, 특히 관악음악에 기여한 몫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그가 여는 “대금 산조 원형발표회‘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특히 그는 보수적인 국악의 풍토 속에서 눈총을 받아가며 60년대 말부터 대금과 서양악기와의 협연은 물론 대금을 이용한 가요, 팝, 재즈 연주를 시도했고 이렇게 만든 크로스오버 음반도 수십 개나 된다. 그러기에 그는 '퓨전국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의 원조로 불리고 있다.





▲ 피리를 들고 해설을 하고(왼쪽) ,통소 연주를 하는 이생강 명인 ⓒ 김영조



시작하자 맨 먼저 그는 옥색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채 피리와 퉁소를 가지고 나온다. 그러면서 그가 대금 독주자로 알려진 계기와 연주법을 잠시 설명한다.

“저는 최근 많은 국악인이 퓨전을 한다며 기초도 없이 연주를 하고, 음반을 제작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퓨전은 우리 것의 정립 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서양음악의 보조자 구실밖에 하지 못합니다. 퓨전음악 즉 크로스오버를 하려면 산조의 기본이 바탕이 돼야 하고 그래서 오늘 저는 대금산조의 원형을 밝히는 연주를 하려는 것입니다.

1960년 5월 17일 국제민속예술제에 참가하는 단원들은 직항 비행기가 없어 6~7개 나라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반주단으로 따라갔지요. 그런데 한 무용 출연자가 갑자기 몸이 아파 무대에 나설 수 없었습니다. 그 비는 시간 13분 정도를 저보고 때우라는 지시를 받았고, 제가 대신 무대에서 처음으로 대금 산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마 대금이 독주악기로 대중들에게 처음 선을 보인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때 명인은 반주 악기로만 여겨왔던 대금으로 독주를 하여 언론으로부터 “마치 수십만 마리의 꿀벌들이 꽃을 나르기 위해 날아다니는 듯한 소리와 비슷하다.”라고 격찬을 받았고, 서양 사람들에게 우리의 대금소리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옛일을 회상하며 명인은 감회에 젖는듯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대금을 부는 호흡법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대금을 불 때는 호흡법이 가장 중요합니다. 보통 헛바람, 입김, 입바람으로 불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헛바람은 외부호흡으로 소리가 거칠고 탁하게 나며, 호흡이 짧아 자주 호흡을 해야 하므로 오래 연주하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상 중 하 음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 단점이 있지요.

하지만, 입김 즉 복식호흡으로 대금을 불게 되면 맑고 부드러운 음이 나오면서 호흡도 여유있게 조절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어떤 선생님에게 대금을 배우던 이 호흡법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설명을 한 뒤 명인은 피리와 퉁소를 애절하게 연주한다. 명인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며칠 전에 퇴원했기에 많은 부담을 가지고 연주한 것이지만 전혀 연주에는 문제가 없다. 그저 타고난 명인임을 무대에서 증명하고 있다. 대신 한동안 앉아 연주한 뒤 일어설 때는 옆에서 부축해주어야만 해서 안타까움이 있었다.




▲ 강태홍 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는 임경주(가운데)와 문하생 ⓒ 김영조




▲ 시나위에 맞춰 살풀이춤을 추는 정명숙 ⓒ 김영조




▲ 북한대금을 연주하는 연변대학 김동설 교수 ⓒ 김영조




명인의 피리와 퉁소 독주에 이어 강태홍 류 가야금산조보존회 회장인 임경주씨 외 2명이 강태홍 류 가야금산조를 연주한다. 강태홍 류 가야금 산조는 그 예가 없을 정도로 소리가 깊고, 농현기법이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운 치마저고리 차림의 세 연주자는 마치 새가 줄 위를 날아다니듯 손의 놀림이 현란하다. 그 소리에 청중들은 잠시 넋을 놓고 황홀경에 빠진다.

계속해서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 후보인 정명숙씨가 한을 풀어내는 살풀이 몸짓을 열었고, 이어서 현재 연변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김동설 대금교수가 북한대금을 연주해 청중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북한대금은 북한이 음역을 넓히기 위해 개량한 악기이다. 겉모습이 마치 클라리넷처럼 검정으로 칠해져 있는데 자단나무로 만든 이 대금은 12 평균율로 제작하여 3옥타브를 넘나들고, 조에 제한이 없다는 설명이다.

다음의 연주는 무대가 꽉 찬다. 명인의 제자들 가운데 남성 연주자 13명과 여성 연주자 2명이 혼신 다해 이생강 류 대금산조 합주로 온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들 모두 무대에서 훌륭하게 독주를 할 중견 연주자들이지만 이날 만은 스승을 위해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이생강 류 대금 산조 합주를 하는 15인의 이생강 문하생 ⓒ 김영조




▲ 태평무를 추는 강윤나 ⓒ 김영조




▲ 이별가, 정선아리랑, 한오백년을 소리하는 임정란 ⓒ 김영조




대금합주가 끝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강윤나씨의 ‘태평무“가 화려한 무대를 만들고, 경기도 제31호 에능보유자인 경기명창 임정란씨의 민요 이별가. 정선아리랑, 한오백년이 걸쭉하게 펼쳐진다.

이날 연주의 마지막은 이생강 명인이 장식한다. 분홍색 도포차림으로 등장한 명인은 이제 대금을 들고 무대에 앉는다. 그리고 또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대금산조야 원래 남도지방에서 발달한 것이지만 대금연주도 경서도 방식과 동부리도 있습니다. 저의 전공도 남도의 대금산조의 대금산조가 확실한데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각각의 류를 함께 전수받았기에 오늘은 긴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의 맛을 보여드리고, 본래의 전공인 산조를 하겠습니다.”

명인은 6.25 피난시절 부산에서 하루 5~9분의 스승을 찾아다니며, 미친 듯 공부한 것이 바탕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가볍게 긴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의 연주를 마치고, 명인은 대금산조 본바탕을 연주한다. 한의 가락을 풀어내는 명인의 손가락은 대금의 위를 더듬듯 쓸어내린다. 그는 마치 신들린 듯 연주한다. 수술을 받은 사람답지 않게 대금 가락이 절정을 이룬다.

명인은 눈을 감듯 연주하고, 눈을 뜨듯 소리를 뿜어낸다. 작은 공연장 안은 숨죽인 듯 고요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반주자인 장덕화 선생의 장구와 어울려 젓대소리는 초겨울 하늘을 나른다. 우리는 이날의 감동을 영원히 간직하리라.

이날 공연장에 온 청중 이백수(55) 동대문바른선거시민모임 회장은 말한다. 처음엔 “피리가 보이고, 춤이 보였지만 대금 소리에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었었다. 명인의 얼굴도 보이지 않고, 그저 젓대소리만만 가슴 속에 그득히 감겨왔다. 대금 연주를 듣는 내내 나는 황홀경 속에 빠진 듯했다.” 아마 이날 청중들은 모두 그런 느낌이었으리라.
작은 공연장에서 연주자의 숨소리와 해설까지 들어가며 즐겼던 이날은 그 누구도 기억에 새로울 것이다.

또 이날 특별출연한 연변대학 김동설 교수는 “조국에 와서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북한대금을 연주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좀 더 공부하고, 원형을 분명히 하는 연주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라고 소감을 말한다.





▲ 대금 연주에 혼신을 다하는 이생강 명인 ⓒ 김영조




연주뿐 아니라 연주자들이 입었던 한복에도 예찬이 쏟아졌으며, 명인과 함께 출연한 모두에게 청중들은 한결같은 손뼉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 최고의 명인 연주회에 빈자리가 많았던 점, 일부 출연자가 한복을 입지 않은 것은 옥에 티라고 말들 한다. 주최나 주관 실무자들은 청중들이 이런 데까지도 놓치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만,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공연 때 자리가 없어 보지 못하고 돌아간 500여 명의 팬이 항의를 했던 적이 있었고, 원형발표회이기 때문에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홍보를 하지 않아서 빈자리가 많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해설이 있는 명인의 연주에 함께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크게 다가왔다.

병술년 한 해도 우리는 많은 일을 겪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여 세계가 요동을 쳤고, 국내에서는 아파트값 폭등,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등으로 서민들에겐 늘 우울한 소식만 들렸으며, 정치권의 싸움질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이때 우리는 이생강 명인의 원형 젓대소리가 하늘로 올라가 다시 만파식적이 되어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 다음 2006-12-01
 
<b><font color="#b22222">한쪽 팔의 대금연주, 청중은 숨을 멈췄다. 
<b><font color="#b22222">풍류가객들의 한마당, 열린 국악무대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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