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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가객들의 한마당, 열린 국악무대 보았는가?   06-11-26
김영조   4,478
 

풍류가객들의 한마당, 열린 국악무대 보았는가?

탑(TOP)음반 100번째 발매 기념공연





▲ (왼쪽)무대에 펼쳐진 100번째 기념공연 펼침막, 왼쪽엔 권오순 여사의 사진과
장사익씨가 쓴 글이 보인다 / (오른쪽) 100번째 탑시디 표지 ⓒ 김영조





▲ 구수한 진행 솜씨를 보인 양정환씨 ⓒ 김영조




세상에는 별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남자가 여자와 결혼하여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보편적인 삶이지만, 남자나 여자가 아닌 국악과 50평생을 함께 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탑예술기획 대표 양정환씨가 그이다.

그런 그가 지난 11월 17일(금) 저녁 7시 30분에 한국문화의집에서 '탑시디(TOPCD)
이야기와 소리의 밤'을 열었다. 그는 이 공연에 이야기 진행을 맡아 구수한 말솜씨를
자랑했다. 한국문화의집은 총 243석의 아담한 공연장이다.

이번 공연은 그가 1996년에 발매를 시작한 탑시디 시리즈의 음반 100번째를 기록한 것과
미국 의회도서관, 영국 대영도서관 소장자료 제공을 기념한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 더하여
어머니 권오순 여사의 효부상 수상 50년을 아울러 기념하는 공연이다.

공연은 시작부터 예스럽지 않다. 진행자 양씨가 무대 아래에서 마이크를 잡고 시작하더니
알려진 명창이 아닌 충남 서산의 풍류가객 박인규씨의 소리가 먼저 펼쳐진다. 그저 소리가
좋아 다른 일을 하면서도 소리를 놓을 수 없다며 시작한 그의 소리는 걸쭉하다. 청중들의
추임새에 신명이 난다.

이어서 경기도 포천의 풀피리 명인 오세철씨가 무대에 오른다. 오씨는 무대 위의 화분에서
잎을 하나 따내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어디서건 어떤 종류이건 나뭇잎이나 풀잎만 있으면
연주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신명은 그를 무대 위에 잡아놓지를 못한다. 무대
아래에 양정환씨의 어머니에게 가더니 신나게 불어 젖히고 어머니가 춤을 출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리곤 무대 아래를 여기저기 휘젓고 다닌다.





▲ 소리를 하는 서산 풍류가객 박인규(왼쪽)와 충주의 숨겨진 명창 권재은 ⓒ 김영조





▲ 풀피리 명인 오세철씨가 권오순 여사에게 가서 연주를 하자 권여사는 흥에겨워 춤을
추었다. ⓒ 허갑균




▲ 양정환씨의 어머니 권오순 여사가 50년 전에 받은 효부상 ⓒ 양정환




그리고 무대에 오른 충주의 숨겨진 명창 권재은씨는 뭔가 불편하다. 알고 보니 눈이 많이
나쁘단다. 양정환씨가 먼저 권씨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지난 8월 초 한창 더운 날 그에게 전화가 와서 충주에서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들어봐 달라고 했다. 몇 마디 나눠보니 예사 사람이 아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걸음에
달려가 들어보니 혼자 다듬은 소리여서 거친 부분도 있지만 개성이 뚜렷했고,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권 선생과는 그때부터 인연이 되었다.”

권씨는 몸은 불편했지만 신명은 그 누구보다도 분명했고,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소리는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정말 그는 숨겨진 명창이 확실했다.

권씨의 공연이 끝난 뒤 진행자는 잠시 숨을 고른다. 무슨 일일까? 무대 뒤의 막에 보이는
영상엔 느닷없이 한문으로 된 문서가 비친다. 알고 보니 양씨의 어머니가 50년 전에 받은
효부상 문서이다. 판소리 전문가이며, 한문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양씨의 고음반연구회
동지인 배연형씨가 해설을 한다. 그런데 이 문서에는 권씨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고,
“양석근처”라고 되어 있어서 안타깝다.

이 시대에 효도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양씨의 어머니 권 오순 여사의 효부상 50년은 뜻깊은
일이라고 청중들은 입을 모은다. 양씨는 이야기하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어머니’라는
낱말엔 담담할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 이병욱과 그의 가족 국악실내악단 '둥지'의 연주 ⓒ 김영조




▲ 토종소리꾼의 매력을 발산하는 장사익 ⓒ 김영조




이어서 양씨와 24년 인연이 있다는 서원대 이병욱 교수가 이끄는 국악가족실내악단 ‘둥지’의
공연이 펼쳐진다. 이 교수의 부인 황경애씨가 장구를 맡고, 아들과 딸, 며느리가 대금, 가야금,
거문고를 연주하는 가운데 이 교수는 기타 연주와 노래를 한다. 그가 ‘금강산’을 열창하자
공연장은 잠시 압도된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이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씨. 그는 역시 팬들을 몰고 다니는가 보다.
구성지게 불러 제끼는 그의 솜씨는 누가 감히 따라올 것인가? 뛰어난 가창력, 깊이 있는 음색,
토종 소리꾼의 매력이 한껏 드러난다.

1시간 30분의 공연 예정시간이 무려 1시간 이상 길어졌다. 그런데 아무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다. 구수한 진행에 신명의 소리꾼과 연주자, 그에 흠뻑 취한 청중들이 빚어낸 한편의
드라마였다. 출연자들은 무대 뒤 대기실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청중과 함께 객석에 앉았다.
이런 열린 무대에 출연자들은 처음에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출연자,
청중 모두 흡족해 했다. 그들은 내년에도 이런 열린 무대를 갖자고 한 목소리를 낸다.

한 청중은 탑시디 누리집(www.gugakcd.com) 이야기 방에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들려준다 “세상에 때묻지 않은 거인이 있었습니다. ‘양정환’ 수식도 꾸밈도 지나침도 없이
마냥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진정한 거인이었습니다. ~ 삶의 소리, 풍류의 소리, 자연의 소리,
정(情)의 소리, 천상의 소리가 놀고 즐기며 사람을 만들고 행복을 만들었습니다”




▲ 오세철씨가 청중 앞을 돌아다니며 자유스럽게 연주하고 출연자들은 청중과 함께 앉아있는
열린 무대 ⓒ 김영조




어느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한 장르, 국악만으로 100장의 음반을 낸 것에 국악인들은 크게
손뼉을 쳤다. 그것도 그 음반들은 명성 있는 대가들만이 아닌 숨어있는 소리꾼들을 많이 발굴해
낸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더구나 이 탑시디 음반들이 미국 의회도서관과 영국 대영도서관에
소장자료로 제공된 것은 축하할 일이라고 국악인들은 입을 모은다.

이 시대에 드문 사람, 양정환씨는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성취를 맛보았다. 그는 약속시간에 단
1분도 어기지 않는 철저함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은 큰 나라나 대기업이 만이 아니라 양정환씨가 같이 분명한 철학을 가진 사람도 그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 형식, 출연자 모두가 자유로운 열린 무대를 원했다"

[대담] 탑예술기획 양정환 대표





▲ 대담을 하는 양정환과 허갑균 ⓒ김영조


- 어떻게 국악을 좋아하고, 음반을 내게 되었나?

"1970년대 말부터 국악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 초부터 한소리회에서 단소를 배웠다.
그리고 국악을 더 많이 듣기 위해 청계천에서 음반을 사 모았다. 그 뒤 1980년대 말 이보영
선생님을 모시고, 배연형, 정창관씨들과 고음반연구회를 창립한 것이 국악을 좋아해 온 내력이다.

그런데 음반을 사 모으면서 느낀 것은 음반 기록이 부실하다는 점이었다. 연주자나 소리꾼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음반제작에 참여하여 과정을 지켜보다가 기록을
정확하게 한 음반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90년대 초 김옥심, 안향련, 전추산 음반을 기획했고,
1996부터는 직접 제작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100개의 국악음반이 나온 것이다."

- 음반을 제작하면서 어려웠거나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었을 텐데.

"잘 팔리지 않는 국악 음반의 제작을 음반사들이 기피하는 바람에 초창기 기획음반의 경우는 안
팔리면 전부 회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 수밖에 없었다. 전태용 선생의 음반은 제대로 녹음된 것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생일잔치에서 녹음기로 한 것들이어서 이를 모으고 정리하여 녹음하는데
무려 2년 6개월이나 걸렸다.

음반을 사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소리를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목이 안 되면 녹음하지
않았다. 지방에 계시는 분들은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그냥
돌려보내기도 했는데 그분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철저하지 않았다면 100장의
음반이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 탑시디 음반의 특징이라면, 또 100번째 음반을 김종회, 이창규 선생의 음반으로 한 까닭은?

"탑시디 음반은 모두 국악만 녹음했다는 게 첫 번째 특징이다. 그리고 음반 관련 기록을 철저히 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연주자나 소리꾼의 이름은 물론 연주 시간 등을 모두 기록했는데 특히 시디 자체
인쇄에도 웬만한 기록은 다 되었다. 100년 뒤 해설서가 없어져도 음반을 보고 기본적인 것은 알도록
하고 싶었다. 또 처음부터 외국에 알리기 위해 해설서에 영문 번역을 해 넣었다.

100번째 음반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이왕직 아악부 악사였고, 현재 88살의 고령인데도 악기를
놓지 않고 연주를 하고 있으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신 두 분이야말로 국악인들의 귀감이라고 생각되어
결정했다."

- 열린 무대를 만들게 된 까닭은?

"나는 예전부터 출연자들이 대기실에 있다가 나오는 기존 공연의 틀을 탈피하는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또 출연자가 연주를 보여주는 손님이 아니라 같이하는 주인이고, 독립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는 공연, 연주자가 즉석에서 분위기에 맞춰 하고싶은 노래를 하는 그런 공연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또 이번엔 못했지만 객석에 구경하러 온 소리꾼을 깜짝 출연시키고, 시간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따라 ‘갈 데까지 가보자’라는 고무줄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출연자를 모두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 나온다. 그리고…. 라고 하며, 모든 공연형식을 자유롭게 가져갔으면 한다."

양정환씨는 국악을 일이라 생각하면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저 취미라 생각하니 어려워도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연 출연자는 모두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가 일하는 사무실은 음반사 답지 않게 아주 소박한 모습이었다. 20여 년을 같이한 허갑균 부장은 대담의
끝자락에 한마디 덧붙여 주었다.

"양대표는 음악, 대인관계, 업무처리 모두 완벽을 추구한다. 서울 같은 복잡한 도시에서 약속시간 1분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 심지어 지난해 한 공연에서 피리로 영산회상을 악보 없이 모두 외워서
연주한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그의 철저함이 탑시디 100장을 나오게 했을 것이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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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1 14:38 ⓒ 2006 OhmyNews

 
<b><font color="b22222">이생강 명인, 청중을 압도하다. 
<b><font color="#b22222">민간이 운영하는 세종국악관현악단을 지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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