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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재, 그가 겨레의 음악을 지휘했다.   06-11-01
김영조   4,146
 

김홍재, 그가 겨레의 음악을 지휘했다.

“겨레의 노래뎐 2006” 공연 열려





▲ “겨레의 노래뎐 2006”을 연주하는 김홍재와 국립국악관현악단 ⓒ 김영조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오랜 세월을 낚은 한이요, 흥이요 삶이 일 것이다.
우리 겨레는 태고 적부터 춤과 음악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음악은 우리 겨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세계 어디에서든 아리랑을 들으면 한 겨레임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남과 북이 하나 되기에 음악은 아주 좋은 도구이다.

하여 어제 10월 20일 밤 7시 30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함께 하는
“겨레의 노래뎐 2006” 공연이 열렸다. 남과 북이 함께 통일로 가는 길을 음악으로 제시하려는
것이며, 흩어진 한민족과 7천만 겨레 모두에게 바치는 공연이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황병기 예술감독은 이날 고연과 관련하여 “오늘 음악회는 국가로서의 남과 북이
아닌 한민족, 한겨레로서의 남과 북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비록 정치적 이념이 서로 다르지만
서로 동일한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의 겨레인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선 민족 공동심을 고취할 수 있는 활발한 교류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말한다.





▲ 여는 마당 "사자놀이" - 한국 퉁소연구회 ⓒ 김영조





▲ 관현악과 무용 "새봄"을 주제로 한 살풀이 - 무용 이경화 ⓒ 김영조




이 “겨레의 노래뎐 2006”은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황병기)과 “무국적 조센진에서 일본
최정상의 지휘자”가 된 거장 김홍재가 함께 했다. 김홍재는 재일 조선인이란 굴레를 과감히 떨고
일어선 재일동포의 희망이라는 평가를 받는 지휘자이다.

김홍재는 일본에서 최고의 지휘자로 성장하는 동안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조선
국적이란 까닭으로 대한민국 땅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홍재의 국적이 ‘조선’이
된 것은 해방이후 일본에 귀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북한 어느 쪽도 조국이 아니라고 할 수
없었기에 사실은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까닭이다.

지난 2000년 국내에서 “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란 책이 출판된 이후 몇 번의 연주 나들이를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번 그의 지휘는 국악관현악단으로는 처음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지난
8월 한 지방의 시립관현악단이 국악을 연주했는데 그때 지휘자가 한국적인 맛이 없이 딱딱하게
지휘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 “겨레의 노래뎐 2006” 장면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손정아의 관현악과 성악, 최희진의
관현악과 동요, 김계옥의 가야금 협주곡) ⓒ 김영조




▲ “겨레의 노래뎐 2006” 장면들(왼쪽부터 정은숙의 관현악과 가곡, 장사익의 관현악과 가요)
ⓒ 김영조




하지만, 그는 국악관현악 지휘에도 천재성을 드러냈다. 겨레의 음악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 낸
것이다. 지휘하는 모습에서 그는 여지없는 한국인임을 드러냈다. 어쩌면 익살스럽고, 어쩌면
진지한 그의 지휘는 청중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었다.

공연은 맨 먼저 한국퉁소연주회가 함께 한 북녘 땅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사자놀이”로
시작했다. 관중석 뒤에서부터 사자가 등장하고, 퉁소를 부는 사람들이 뒤따라가며 무대에 올라서
한바탕 흥을 돋운다. 이어서 백대웅 작곡, 계성원 편곡의 “북청사자 놀음”이 연주되었다.

이후 1부엔 황진이 작시, 안용희 작곡, 손정아 노래의 관현악과 성악 “이 마음 밝히리”, 한시준
작곡, 저대연주 박재호의 저대 협주곡 “노한 파도”, 지원석이 편곡하여 김계옥이 가야금으로
연주한 전통민요 “도라지”, 안기옥 작곡, 이경화 무용의 관현악과 무용 “새봄‘을 주제로 한
살풀이가 있었다.






▲ 관현악과 합창을 하는 국립오페라합창단 ⓒ 김영조




▲ "우리는 하나"를 열창하여 청중을 하나로 한 윤인숙 ⓒ 김영조




이 가운데 저대 협주곡 “노한 파도”는 대금을 개량한 북한의 저대를 연주한 것인데 대금의
음색과 달리 가벼움을 느끼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에 반해 가야금 협주곡 “도라지”는
원래의 가야금보다는 가벼운 음색을 낸다는 25현 가야금으로 연주한 것이었는데도 그런 느낌을
줄이고, 아주 흥겹게 연주되었다.

잠시 뒤 시작한 2부는 관현악과 가곡 “그네”, “진달래꽃”을 정은숙이 부른 다음 관현악과
동요 “통일여행”, “어린이 나라‘를 최희진 어린이가 불렀다. 최희진 어린이는 깜찍한
몸짓과 고운 노래를 선보여 청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어 걸쭉한 소리꾼 장사익이 부른 ”황혼길“과 ’국밥집에서”는 여전히 그의 소리가 대중의
것임을 보여주었고, 해금의 기막힌 호응은 노래를 빛내 주었다. 다음 국립오페라합창단과 함께
한 관현악과 합창 “농부가”, “신고산 타령”, “한강수 타령‘이 우렁차게 불렸다.




▲ 지휘하는 김홍재 ⓒ 국립국악관현악단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윤이상 선생의 제자로 민족성악을 부르짖는 윤인숙이 합창단과 함께 한
통일을 위한 대합창 ”우리는 하나“, ”통일의 길“이었다. ”우리는 하나” 성악곡은 “우리는
하나‘라는 말 하나가 가사의 전부로 어디서든 감동을 자아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지난 6월 독일
공연에서도 윤인숙은 이 노래로 큰 손뼉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 날도 이 하나의 곡으로
청중은 하나가 되었다.

나는 하루 전 한 대학 가야금연주단의 공연을 보고 실망을 했던 터였다. 가야금과 해금의 협연에
비보이가 출연하여 음악은 비보이의 반주 음악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의 연주에선 정체성이
보이지 않아 이게 과연 국악인가 할 정도였었다.

하지만 “겨레의 노래뎐 2006”은 하루 전의 우울함을 시원하게 날려주고 있었다. 어쩌면 일본
최고의 지휘자 김홍재에 그를 잘 받쳐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진가를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가을밤 아름답게 수놓은 겨레의 노래는 이렇게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 가슴 속 깊이에서 겨레의 흥이 나온다.

[대담] "겨레의 노래뎐 2006"을 지휘한 김홍재





▲ 대담 중인 지휘자 김홍재 ⓒ김영조



-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조선 국적으로 버틴 탓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물론 조금의 어려움은 있었다. 특히 해외공연을 할 때 여권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재일동포면 누구나 겪는 것이기에, 또 나는 조선인이기에
당연히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렇게 견딘 것이 지금 당당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국악관현악단 지휘는 처음인 것으로 안다. 어려움은 없었나?

"당연히 서양악기가 아닌 국악기들로 이루어져 긴장한 것은 사실이다. 예전 중국이나 몽골의
음악을 연주할 때는 전혀 생소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악기를 늘 접하고 살았던 탓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처음임에도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은 나도 같은 겨레의 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 같이 한 단원들이
한 마음이 되었던 데도 있었을 것이다."


-지휘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음악에 더 없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었다. 무슨 비결이라도?

"지휘자는 청중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청중들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해야 하고, 분위기를 잘
받아 같이 호흡해야 한다. 그런 자세로 하면 누구나 가능할 것이다. 국악을 클래식 지휘하듯
하면 청중의 바람과 어긋날 뿐이다. 혹시 저 깊은 내 가슴 속에서도 겨레의 흥이 솟는 건
아닐까?"


김홍재와는 일본에 다시 돌아가야 할 일정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늘 겨레의 음악을 하겠다는 뜻만을 확인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저 겸손하고, 친밀한
한 사람이었다.

김홍재 옆에는 늘 그의 외삼촌 이철우 재일조선예술연구소 소장이 같이 한다. 이철우는
오늘의 김홍재를 있게 한 사람이다. 김홍재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이철우의 집에서 기거했고,
음악을 하는 데 늘 그의 손길이 닿았다고 한다. 이철우는 말한다.


"김홍재의 외가인 우리 집안은 3형제가 모두 음악을 할 정도로 음악가 집안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김홍재는 자연 음악을 하게 되었다. 무국적자로 남아 있었던 까닭은 일본에서
민족학교의 교장과 교사를 한 부모의 영향이 컸다. 김홍재의 부모와 김홍재는 조선 민족이기에
일본 이름으로 활동해서는 안 되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란 책을 냈을 때 책머리에는 수익금으로 민족학교를 지을
것이라고 했지만 학교를 지을 만큼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도 늘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은 동포들을 위해 관현악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기엔 큰돈을 들여야 하기에 한국 정부의 도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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