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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를 이긴 정도전의 궁궐 짓기는 잘못   06-03-09
김영조   4,515
 

무학대사를 이긴 정도전의 궁궐 짓기는 잘못


국토사랑방, 2월 창경궁 답사 동행기





▲ 창덕궁의 중심건물, 인정전 ⓒ 김영조




지난 1월의 국토사랑방 답사는 순천 선암사, 금둔사, 순천만에서 여수의 향일암으로
이어졌었다. 2월엔 가까이 있는 조선의 궁궐 창덕궁을 찾아보기로 했다. 토요일 늦은 2시
서둘러 가니 돈화문 옆 휴게실에 모여들 있다. 오늘은 꽃샘바람도 없이 온화한 날씨다.

현존하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에 들어갔다. 안내그림판
앞에서 문화해설사가 기본적인 설명을 들려준다. 금천을 가로질러 놓인 금천교를 건너간다.
아직 나무에 움이 트고, 꽃이 피기엔 이른 철이어서 조금은 쓸쓸한 모습이다.



▲ 인정전 앞에 있는 드므와 부간주 ⓒ 김영조



우리는 ‘인정문’을 통해 인정전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우리는 모임의 목적인 명당 확인을
한다. 덕원 선생이 앨로드(L자 모양의 금속으로 된, 명당 찾는 도구)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본다. 인정전이 아닌, 인정전을 비껴서 바로 앞, 그리고 종1품 품계석 부근이 명당이라고
덕원 선생은 짚어낸다. 그래서 조선 오백년 동안 정1품, 종1품 등의 중신들이 임금을 가지고
논 까닭이라는 지적이다.

나는 ‘마음으로 읽는 궁궐이야기’(윤돌, 이비락)에서 본 ‘드므’와 ‘부간주’를 찾았다.
‘드므’는 화재를 막기 위해 물을 담아 상징적으로 놓아둔 것인데 화마가 왔다가 드므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간주’란 액운을 막아준다 하여
상징적으로 놓아둔 것인데 동지에는 여기에다 팥죽을 끓여 먹기도 한 것이란다. 문화유적을
찾을 때 이런 것들에 관심을 두고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일이다.

그리곤 국보 제225호 인정전(仁政殿)을 자세히 살핀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 사신을 만난 장소로 사용됐으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때에도
이곳을 이용하였다. 또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였을 때나 국가의 커다란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왕이 인정전으로 나아가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4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 지붕 꼭대기는 오얏꽃 무늬로 장식됐는데, 이것은 한말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던
무늬다. 인정전 안 천장 가운데는 한 단을 높여 구름 사이로 봉황 두 마리를 채색하여 그려
넣었다. 뒷면의 높은 기둥 사이에 임금이 앉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그 뒤에는 해와 달, 5개의
봉우리를 그린 ‘일월오악도’ 병풍이 있다.


한겨레의 나무 소나무, 창덕궁 곳곳에서도 발견돼




▲ 내의원 앞 명당(소나무가 붉은 껍질로 변한다) ⓒ 김영조




나는 어디를 가나 소나무를 유심히 관찰한다. 우리 겨레는 태어날 때 소나무집에서 태어나고,
소나무와 함께 살았으며, 죽어서도 소나무 관에 들어가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소나무는
배달겨레의 상징이다. 여기 창덕궁 안 곳곳에도 기묘하게 구부러진 조선소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런데 내의원 앞에 있는 소나무가 이상하다. 몇몇 소나무들이 위로 올라가면서 붉은 껍질이
되어 있다. 혹시나 하고 덕원 선생에게 그 까닭을 아는지 물었다. 덕원 선생은 이 부근이
명당으로, 기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그곳이 붉게 변한 것이라고 한다. 앨로드로
확인하니 역시 그 소나무 부근에 지름 10미터 정도의 달걀모양이 뜨면서 기운이 확인됐다.




▲ 부용지와 부용정의 아름다움 ⓒ 김영조




후원 쪽으로 넘어가자 네모진 아름다운 연못 부용지가 나온다. 연못 가운데는 동그란 섬이 있고,
섬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네모진 연못에 동그란 섬을 만든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며,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우주의 원리’를 표현했기 때문이란다.
부용지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

부용지의 한쪽엔 아름다운 정자 ‘부용정’이 있고, 또 부용정 맞은편 언덕 위엔 ‘주합루’가
자리 잡았다. 주합루의 1층은 ‘규장각'으로 임금의 글이나 물품을 보관하던 서고였으나 정조
때는 학문연구실과 왕립도서관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2층 주합루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하고, 그들과 정사를 의논하며, 왕도정치를 펴던 곳이라 한다.





▲ 애련지와 애련정 ⓒ 김영조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자 아름다운 연못이 또 나온다. 거기에 작고 아담한 정자가 있는데 이름
하여 ‘애련정’. 숙종 18년(1792년)에 만든 정자로서 창덕궁을 누구보다도 가꾸고 싶어 했던
숙종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정자라고 한다. 애련정이 만들어진 숙종 때 붕당정치는 극에
달하여 반대파를 죽이고 또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 등 어수선하고 복잡한 정국이었다. 그 한복판에
선 숙종은 격무까지 겹쳐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이곳 애련정에서 달래고자 했지 않을까?

애련지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작은 연못이 나오고 이곳 북쪽 터에 연경당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연경당은 순조 28년 (1828)에 당시 왕세자였던 효명세자의 청으로 사대부 집을
본떠 궁궐 안에 지은 이른바 99칸 집이다. 그런데 이 연경당의 대문은 ‘장락문’으로 솟을대문이다.

평대문이 대문을 설치한 행랑채의 지붕과 같은 높이라면 솟을대문은 행랑채 지붕보다 한층 높인
지붕을 덮고 있다. 조선시대 관료 중 종 2품 이상 관료는 '초헌'이라는 외바퀴 수레를 타고 대궐에
드나들었다. 이때 이 초헌을 탄 채로 대문을 드나들려면 대문 지붕이 주변 행랑채보다 한층 높아야
됐고, 또 문지방 중앙은 홈을 파서 외바퀴가 지나가도록 만들어야 했다.


창덕궁 대문 무조건 남향으로만 지은 게 잘못

그런데 덕원 선생은 이 연경당도 명당을 비켜서 지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의 흐름에 따른다면
대문이 동향이어야 맞는데 무조건 남향으로만 지은 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창덕궁 전체가 모두
남향인 게, 조선이 편안한 나라가 되지 못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무악대사가 아닌 정도전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궁궐의 잘못된 모습이라고 말한다.





▲ 연경당과 장락문 ⓒ 김영조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왕조가 한양을 수도로 하고 대궐을 지을 때 당대 풍수의 대가이며 불교계
왕사인 무학대사와 유학의 거목인 정도전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무학대사는 “건물의 방위를 정함에 있어 인왕산(서쪽 위치)을 주산(후광)으로 하여 낙산을 바라보는
형상이 국운이 장고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정도전은 “일국의 장래를 어찌 미심쩍게 풍수에만 맡길
수 있겠는가? 군주가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선 남쪽을 향하고 북쪽을 등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정도전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북악산(청와대 뒷산)을 주산으로 하여 남산을 바라보는 지금의
경복궁 위치에 대궐이 지어졌으며, 창덕궁 등 다른 궁궐도 이에 따랐다.

무학대사는 정도전의 주장대로 궁궐이 지어지자 북악산(백악산)의 산세가 갈라지고 찢어지는 가파른
형상이라 200년 뒤 반드시 이 나라에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며, 왕사의 직분을 버리고 산사로
들어가 잠적해 버렸다고 한다.

우리는 나오다가 '운현궁'을 들러보기로 했다. 운현궁이란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로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있다. 운현궁은 조선조 제26대 고종이 임금이 되기 전에 살던 곳이며 흥선대원군의
집이다. 또 흥선군 이하응이 왕실집권을 실현한 산실이자 집권 뒤에도 대원군의 위치에서 개혁과
세도정치를 펼친 곳이다.




▲ 운현궁 안 대부인닝이 기거하는 안벙과 주방, 어린
고종이 거처한 곳들.(명당의 기가 서려 있다.)
ⓒ 김영조



덕원 선생은 대부인이 생활했던 안방과 주방 그리고 고종이 어릴 때 거처했을 것으로 보이는 곳에 기가
서려 있다고 말했다. 운현궁은 임금이 태어날 대명당 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
생각해 본다. 고종은 임금으로서 꿈을 완성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긴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 대명당도
완벽한 것이 아니라 조금 흠이 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오늘 왕조와 궁궐 그리고 풍수지리가 얽힌 곳을 둘러보았다. 아직 나는 명당이 뭐고 풍수지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와 경락을 미신이라고 여기던 서양의학계에서 최근
과학적으로 인정하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었다. 그걸 본다면 풍수지리를 무조건 낮추어보는 모습은 좋은
자세가 아닐 터이다.

새봄이 멀리서 손짓하는 2월의 마지막 토요일, 우리는 궁궐의 아름다움과 그 철학 그리고 풍수지리로 본
의미 등을 살펴보았다. 문화유적이나 자연경관을 볼 때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머리로, 가슴으로
보아야만 두고두고 잊지 못할 여행으로 다가올 것이다.



2006-02-27 18:18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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